낯선 도시에서 나를 다시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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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도망치듯 떠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 혹은 끝내고 난 뒤, 이상할 만큼 ‘어딘가로 가고 싶은 충동’이 찾아온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랬다. 지쳐버린 일상 속에서, “한 달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말레이시아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한 달 살기가 끝났는데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도착 첫날, 세상은 조금 느리게 흘렀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KLIA)을 나서는 순간, 시간의 속도가 달라졌다. 한국에서 출발한 지 불과 7시간도 채 안 됐는데, 내가 아는 리듬이 아니었다. 공항 직원의 걸음, 택시 기사님의 말투, 그리고 거리의 공기까지 모두 느긋했다. 처음엔 답답했지만 곧 깨달았다. 여기는 ‘빨리’보다 ‘지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라는 것을.

길을 건너는 사람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이곳에서 내가 처음 배운 건 ‘조급함을 내려놓는 연습’이었다.

한 달 살기의 시작: 계획이 무너지는 것부터가 여행이다

출국 전, 나는 엑셀에 일정을 촘촘히 짰다. “첫 주는 쿠알라룸푸르, 둘째 주는 페낭, 셋째 주는 조호르바루…”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계획이 밀리고, 현지 친구의 초대로 예기치 못한 마을 축제에 가고, 시장에서 길을 잃고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예측 불가능함이 좋아졌다. 오히려 계획이 무너진 순간부터 진짜 경험이 시작되었으니까.

하루의 리듬: 30일 동안 쌓인 작은 습관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하지만 생활의 패턴이 몸에 스며들기엔 충분하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흘렀다.

  • 아침 8시: 근처 카페에서 테 타릭(밀크티) 한 잔으로 시작
  • 오전: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노트북 작업
  • 점심: 호커센터에서 현지식 한 끼 – 나시 르막 또는 차 쿼이 테오
  • 오후: 산책, 시장 구경, 예기치 않은 대화
  • 저녁: 현지 친구들과 마마(노상 레스토랑)에서 수다

이 반복 속에서 나는 ‘여행자’에서 ‘거주자’로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카페 직원이 내 이름을 알고, 호커센터 사장님이 “오늘은 조금 맵게 줄까?”라고 물어보는 사이가 되었다.

문화는 책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나는 이슬람 문화에 대해 책으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실제로 라마단 기간을 보내며 그 의미를 체감했다. 낮에는 거리에서 음식 냄새조차 줄어들고, 해가 지는 순간 모두가 함께 식탁에 앉는다. 그 장면을 보며 느꼈다. 다름은 낯설음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민족 국가라는 말도 이제는 그냥 정보가 아니다.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가 섞여 사는 이곳에서 ‘다양성’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일 마주치는 얼굴이다. 서로 다른 종교와 언어가 부딪히지만, 놀랍게도 충돌보다는 조화를 택한다.

생활비는 생각보다 가볍다, 그러나 가치관은 무겁다

생활비를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면 말레이시아는 분명 저렴한 나라다. 대략적인 생활비 데이터는 여기서 참고할 수 있다: Numbeo 말레이시아 생활비, Expatistan 비교.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무엇에 돈을 쓰는가’였다. 한국에서라면 카페 한 잔 가격이 아까웠지만, 여기서는 친구와의 대화를 위해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게 된다. 소비가 목적이 아니라 경험의 매개가 되는 느낌이다.

현지 친구들과의 대화가 내 사고를 바꿨다

쿠알라룸푸르에서 만난 친구 이즈완은 매일 오후 5시에 일을 멈춘다. 이유를 물으니 “일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니까”라고 말한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한 달이 끝날 무렵, 그 말이 마음 깊숙이 남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해야 하는 일’에 인생을 맞추고 살고 있었던 것 아닐까.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일을 위해 사는 삶에서, 삶을 위해 일하는 삶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비자와 체류, 꼭 알아야 할 현실적인 정보

한 달 체류는 무비자로도 가능하지만, 장기 체류를 생각한다면 MM2H(Malaysia My Second Home)나 취업 비자, 학생 비자 등을 알아보는 게 좋다. 공식 정보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이민국 공식 사이트,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대사관.

한 달 살기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

  • 삶의 속도를 다시 조율하고 싶은 사람
  • 여행 그 이상의 경험을 원하는 사람
  • 해외에서 일하거나 창업을 고민 중인 사람
  • 아이와 함께 문화 다양성을 체험하고 싶은 가족

말레이시아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삶의 실험실’이다. 다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훌륭한 선택이 된다.

작은 팁: 한 달 살기 전 꼭 알아야 할 것

  • 비는 자주 오지만 금세 그친다. 얇은 우비 하나는 필수.
  • 택시 앱 Grab은 거의 필수 앱이다.
  • 사원 방문 시 어깨와 무릎을 가리는 옷차림을 준비하자.
  • 할랄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예의다.
  • 한국보다 의료비가 저렴하지만 여행자 보험은 필수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 쓴 짧은 일기

30일 전, 나는 이곳에 단순히 ‘도피’하러 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삶을 다시 배우기 위해’ 떠난다. 말레이시아에서 배운 건 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가장 큰 배움은 ‘나’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리듬으로 살고 싶은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아마 다시 올 것 같다.”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로,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이곳은 그렇게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 참고 자료 & 유용한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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